갤러리.月.

귀가-도종환

마리나1004 2006. 8. 23. 12:56


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.

 
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
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.

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
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.

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
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
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.

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
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.
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.

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
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
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
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
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.

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
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.

오늘 하지 않고 생각속으로 미루어둔
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
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.
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
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.